2021. 4. 7. 22:37ㆍ1. JEJU ISLAND :: MAGAZINE

黃昏
황혼이란 단어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누를 황, 어두울 혼이 합쳐져 노랗게 저무는 그 순간을 감성적으로 아니 지독히 감정적으로 표현한다. 글의 맵시 또한 과한 듯 과하지 않게 완벽하다. 물리적인 시간과 인생이 공존하는 것 또한 좋다. 해가 진 어둑어둑 한 그 시간을, 우리는 인생의 끝자락에 비유한다. 어찌 이 단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의 황혼은 에매랄드 빛이기를
나의 황혼은 어떨까? 한 번쯤 짚고 넘어갈만한 생각일 듯싶다. 내 찬란할 미래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 내 미래의 결과가 어떤 황혼의 색을 하고 있을지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의 삶은 소모적이다. 지금도 조금씩 조금씩 낭비 혹은 계획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유한하기에 존재하는 황혼 우리는 그 색이 무엇이길 바라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나의 황혼의 색은 은은하게 반짝이는 에메랄드 색이기를 원하고 그러할 것이다. 당신의 색도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코랄빛 황혼
황혼이라는 단어에 반했다면, 물리적인 시간에도 반할 것이다. 낮도 밤도 아닌 개와 늑대의 시간 그 모호함이 주는 신비감이 있다. 가장 따뜻하지만 가장 차가운 것이 황혼이다. 눈으로 보는 따뜻함 속에 몸으로 느끼는 차가운 온도는 신비감을 더한다. 이 또한 우리의 인생과도 비슷하겠지. 누군가에겐 따뜻한 인생의 결말이, 누군가에겐 차가운 인생의 결말이 다가올 테니.
태양이 마지막 빛을 태우는 이 시간은 어느 시간보다 고요하게 그리고 은은하게 코랄 빛의 하늘로 하루의 황홀한 마무리를 선사한다. 하지만 찰나에 순간 낮이 밤에게 주도권을 빼앗겨 금새 캄캄한 어둠으로 변모한다.



황혼의 시간, 용눈이 오름
황혼의 시간 용눈이 오름은 어느 장소보다 고요했고 은은했다. 또 황혼의 시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였다. 탁 트인 사방의 시원한 공기, 그리고 바람, 눈에 보이는 푸른 잔디, 그리고 풀을 뜯어먹는 말 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찰나의 순간이 내 머릿속엔 평생 기억될 것이고, 내 황혼의 시기에 이곳을 떠올리리라 확신이 들었다.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 그렇게 나는 용눈이 오름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에 빠지면 편파적으로 변한다. 나도 그러하다. 편파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용눈이 오름은 그런 곳이다.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편파적이고 괜찮은 그런 장소.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키고. 사랑해주기를 사랑에 빠진 한 사람으로서 여전히 간절히 바란다.



comment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 더 용눈이 오름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 있다. 바로 故김영갑(1957-2005.) 작가. 그는 오름과 사랑에 빠져 제주에 정착했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서 그의 오름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제주를, 그리고 오름을 사랑한다면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방문해 보자.
20년 전 오름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매스컴이나 관광안내서에도 오름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주로 백록담 주변의 고산지대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고, 그렇게 모두들 한라산 하면 백록담을 연상했다.
(중략)
그렇게 20년 동안 줄기차게 중간산 오름들에 매달렸다. 나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제주인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다. 척박함 속에서도 평화로움을 유지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을 수 있다면, 오늘을 사는 나에게도 그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평화가 찾아올 것으로 믿었다.
(중략)
방목장으로 사용되던 드넓은 초원은 골프장으로 변하고, 아름다움이 빼어난 중산간 들녘은 리조트와 펜션으로, 별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제주 사람들의 마음에서 이어도는 지워지고 있다. 이 땅에서 제주다움이 사라질수록, 제주인의 정체성을 잃어갈수록 사람들의 어이도의 비밀은 잊혀지고 있다.
출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홈페이지
내가 죽은 뒤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면, 김영갑 작가와 만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오름, 그가 사랑했던 오름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다. 오름을 사랑한 김영갑 작가의 호소가 현재의 용눈이 오름이 되었다. 특히 마지막 단락은 황혼의 시기, 용눈이 오름과도 관련이 있다. 용눈이 오름이 병들기 시작했다.

comment
부드러운 곡선이 매력적인 용눈이 오름은 360여 개의 오름 중 유일하게 분화구가 3개인 오름이다. 봄과 여름엔 푸른 잔디가 가을과 겨울엔 억새가 덮여 계절마다 다르게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한 오름이다. 또 용눈이 오름은 동쪽에 위치해 날씨가 좋은 날엔 성산일출봉과 우도까지 조망할 수 있고, 다랑쉬 오름과 지미봉이 근처에 있어 용눈이 오름의 멋을 더한다.
용눈이 오름의 유래는 부드러운 곡선과는 사뭇 다르다. '용눈이'는 우리가 아는 용과 관련되어있다. 용눈이 오름의 유래는 '용놀이 오름'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세 개의 봉우리가 흘러내리며 겹쳐지고 비켜서 있는 모습이 마치 용들이 춤추는 것과 같은 모습이어서 용눈이 오름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 용눈이 오름의 부드러운 곡선은 용이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형상한다.

황혼의 끝자락에서 편히 잠드소서
이 모든 사진은 작년 가을의 사진들이다. 그러하다. 현재는 용눈이 오름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용눈이 오름을 갔다가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는 말에 발걸음을 돌리는 여행자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반성 하자. 우리 때문에 용눈이 오름은 서서히 아파갔다. 그렇기 때문에 출입이 금지된 것이다. 나 또한 용눈이 오름을 훼손한 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 그리고 다시 한번 반성한다.
화산송이로 이루어진 용눈이 오름, 화산송이는 손가락으로 눌러도 부서질 정도로 약하다. 발로 밟으면 어떨까? 발로 밟으면 화산송이는 완전히 부서진다. 우리는 이 화산송이를 밟고 밟아 왔다. 그렇게 밟힌 오름은 조금씩 조금씩 닳기 시작했고 황혼기가 찾아왔다. 그렇게 용눈이 오름은 불가피하게 안식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용눈이 오름은 23년 2월 1일까지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휴식을 취하게 된 용눈이 오름의 소식을 들은 나는 부끄러운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었고, 2년 뒤, 건강한 용눈이 오름을 만나길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고생했고, 미안해. 평온한 안식기 속에 회복하여 다시 만나길 간절히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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